케이컬처의 다음 장은 기초예술에서 시작된다
케이컬처의 미래를 준비하는 문화예술정책은 두 가지 일을 함께 해야 한다. 지금의 성취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도록 돕는 일, 그리고 그다음의 성취가 태어날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경쟁력을 갖춘 작품의 해외 진출과 산업적 성장을 지원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성취를 지속하려면 아직 주목받지 못한 창작자가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환경에도 충분히 투자해야 한다.
우리는 다음 봉준호의 탄생을 기대한다. 그렇다면 문화정책이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천 명 가운데 성공할 한 명을 어떻게 골라낼 것인가. 아니면 천 명의 감독이 각자의 영화를 만들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성공한 창작자의 이력을 돌아보는 것과 첫 작품을 준비하는 창작자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미 거둔 성과는 중요한 평가 기준이지만, 그것만으로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까지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가 기대하는 다음 봉준호 역시 기존의 성공을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처 예상하지 못한 시선과 표현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사람일 것이다. 그렇기에 문화정책은 검증된 성과를 키우는 일과 함께, 새로운 시도가 자랄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천 명의 감독이 활동하는 환경은 한 명의 성공을 위해 나머지 999명을 들러리로 세우는 구조가 아니다. 서로의 작품을 보고, 함께 작업하고, 새로운 시도에서 배우며 각자의 다음 작품으로 나아가는 환경이다. 그 안에서 한 사람의 시도는 다른 사람의 영감이 되고, 함께 쌓은 경험은 새로운 작품의 밑바탕이 된다. 어떤 정책도 세계적인 예술가의 탄생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능성을 펼쳐보기도 전에 창작을 포기해야 하는 조건은 바꾸어갈 수 있다.
이 질문은 영화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문학과 연극, 음악과 무용, 시각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익숙하지 않은 표현을 시도하고 자신만의 언어를 발견할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 기초예술의 가치는 문화산업의 성공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당장의 상품성으로 가치를 재단하지 않고 예술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일은 그 자체로 문화정책의 중요한 책무다. 서로 다른 감각과 이야기가 살아 있는 사회에서 다음 시대의 문화적 가능성도 넓어진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정책은 먼저 창작의 진입로를 넓혀야 한다. 이미 성과를 거둔 작품의 도약을 돕는 지원과 함께, 첫 작품과 새로운 실험을 위한 기회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완성된 결과물뿐 아니라 조사와 구상, 연습과 시연도 지원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처음 시작하는 예술가에게도, 기존의 작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예술가에게도 준비하고 시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 투입되는 창작자의 노동에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 역시 기본 조건이다.
한 번의 발표가 다음 창작으로 이어지게 하는 정책도 중요하다. 첫 작품의 성적표가 창작 인생의 마지막 판정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발표 이후 작품을 수정하고 다시 선보일 기회, 동료와 관객의 반응을 바탕으로 다음 작업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단년도 사업의 성과를 확인하는 데서 나아가, 창작자가 여러 작품을 거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지원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경기도에서는 이러한 방향을 지역의 창작 환경과 연결해야 한다. 도와 시군의 창작지원, 공공 공연장과 전시공간의 운영, 지역 간 교류가 서로 이어지도록 하자. 지역에서 준비한 작품을 지역 관객에게 선보이고, 그 만남을 통해 작품을 발전시키며, 다른 지역과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지역을 완성된 문화를 소비하는 곳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새로운 문화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책의 성과를 살피는 기준도 함께 넓혀야 한다. 관객 수와 매출, 수상 실적과 해외 진출뿐 아니라 새로운 창작자가 첫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 한 번의 발표가 다음 작업으로 이어졌는지, 다양한 예술적 시도가 지속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기 전에도 창작의 기반이 얼마나 튼튼해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경기민예총은 기초예술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를 케이컬처 시대 문화예술정책의 중심 과제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산업의 성장과 창작의 토대를 넓히는 일은 함께 추진해야 할 과제다. 오늘의 성취를 세계로 확장하는 정책과 내일의 가능성을 기르는 정책이 함께 갈 때, 케이컬처의 미래도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아직 이름 없는 창작자가 자신의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는가. 케이컬처의 다음 장을 준비하는 문화정책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다음 봉준호를 기대한다면, 오늘의 창작자가 내일도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6.09.22.
정책위원 김소권
케이컬처의 다음 장은 기초예술에서 시작된다
케이컬처의 미래를 준비하는 문화예술정책은 두 가지 일을 함께 해야 한다. 지금의 성취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도록 돕는 일, 그리고 그다음의 성취가 태어날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경쟁력을 갖춘 작품의 해외 진출과 산업적 성장을 지원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성취를 지속하려면 아직 주목받지 못한 창작자가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환경에도 충분히 투자해야 한다.
우리는 다음 봉준호의 탄생을 기대한다. 그렇다면 문화정책이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천 명 가운데 성공할 한 명을 어떻게 골라낼 것인가. 아니면 천 명의 감독이 각자의 영화를 만들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성공한 창작자의 이력을 돌아보는 것과 첫 작품을 준비하는 창작자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미 거둔 성과는 중요한 평가 기준이지만, 그것만으로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까지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가 기대하는 다음 봉준호 역시 기존의 성공을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처 예상하지 못한 시선과 표현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사람일 것이다. 그렇기에 문화정책은 검증된 성과를 키우는 일과 함께, 새로운 시도가 자랄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천 명의 감독이 활동하는 환경은 한 명의 성공을 위해 나머지 999명을 들러리로 세우는 구조가 아니다. 서로의 작품을 보고, 함께 작업하고, 새로운 시도에서 배우며 각자의 다음 작품으로 나아가는 환경이다. 그 안에서 한 사람의 시도는 다른 사람의 영감이 되고, 함께 쌓은 경험은 새로운 작품의 밑바탕이 된다. 어떤 정책도 세계적인 예술가의 탄생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능성을 펼쳐보기도 전에 창작을 포기해야 하는 조건은 바꾸어갈 수 있다.
이 질문은 영화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문학과 연극, 음악과 무용, 시각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익숙하지 않은 표현을 시도하고 자신만의 언어를 발견할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 기초예술의 가치는 문화산업의 성공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당장의 상품성으로 가치를 재단하지 않고 예술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일은 그 자체로 문화정책의 중요한 책무다. 서로 다른 감각과 이야기가 살아 있는 사회에서 다음 시대의 문화적 가능성도 넓어진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정책은 먼저 창작의 진입로를 넓혀야 한다. 이미 성과를 거둔 작품의 도약을 돕는 지원과 함께, 첫 작품과 새로운 실험을 위한 기회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완성된 결과물뿐 아니라 조사와 구상, 연습과 시연도 지원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처음 시작하는 예술가에게도, 기존의 작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예술가에게도 준비하고 시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 투입되는 창작자의 노동에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 역시 기본 조건이다.
한 번의 발표가 다음 창작으로 이어지게 하는 정책도 중요하다. 첫 작품의 성적표가 창작 인생의 마지막 판정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발표 이후 작품을 수정하고 다시 선보일 기회, 동료와 관객의 반응을 바탕으로 다음 작업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단년도 사업의 성과를 확인하는 데서 나아가, 창작자가 여러 작품을 거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지원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경기도에서는 이러한 방향을 지역의 창작 환경과 연결해야 한다. 도와 시군의 창작지원, 공공 공연장과 전시공간의 운영, 지역 간 교류가 서로 이어지도록 하자. 지역에서 준비한 작품을 지역 관객에게 선보이고, 그 만남을 통해 작품을 발전시키며, 다른 지역과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지역을 완성된 문화를 소비하는 곳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새로운 문화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책의 성과를 살피는 기준도 함께 넓혀야 한다. 관객 수와 매출, 수상 실적과 해외 진출뿐 아니라 새로운 창작자가 첫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 한 번의 발표가 다음 작업으로 이어졌는지, 다양한 예술적 시도가 지속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기 전에도 창작의 기반이 얼마나 튼튼해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경기민예총은 기초예술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를 케이컬처 시대 문화예술정책의 중심 과제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산업의 성장과 창작의 토대를 넓히는 일은 함께 추진해야 할 과제다. 오늘의 성취를 세계로 확장하는 정책과 내일의 가능성을 기르는 정책이 함께 갈 때, 케이컬처의 미래도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아직 이름 없는 창작자가 자신의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는가. 케이컬처의 다음 장을 준비하는 문화정책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다음 봉준호를 기대한다면, 오늘의 창작자가 내일도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6.09.22.
정책위원 김소권